신촌역에 내리면, 사방 어느 쪽으로 가나 대학교가 나온다.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가 크게 울타리를 치듯 앉아있고, 그 울타리 안에 음식점과 술집, 카페와 상점이 이어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간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신촌을 알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동네이기도 하다.

어떤 동네에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만 들리는 음악이 있다. 신촌에는 그런 노래가 많다. 어떤 음악은 신촌에서 태어났고, 어떤 노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신촌으로 향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닮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는 아예 신촌에 가지 못하겠다는 노래도 나왔다.

신촌을 걸으며 노래들을 들어보자. 지금의 신촌과 우리가 기억하는 신촌 사이를 걷는 방법이다.

01PUB WOODSTOCK

신촌블루스 <아쉬움>

<아쉬움>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아쉬움>이라는 제목과 달리, 내게 이 노래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리듬도, 가사도, 엇박으로 들어오는 간주도 좋았다. 완벽한 블루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밴드의 이름도 앨범의 이름도 하필 신촌블루스였다. 나는 곧바로 신촌에 가면 늘 이런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생겼다. 신촌을 잘 알아서 생긴 환상이 아니었다. 반대였다. 음악이 먼저, 내가 가보지 않은 신촌을 만들어버렸다.

신촌블루스는 1986년 신촌의 라이브클럽 레드제플린에서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 등이 모여 결성했다. 레드제플린은 이제 없다. 그 시절의 공간들은 사라졌지만, 지금 신촌에서 그 시간의 흔적을 느껴보고 싶다면 우드스탁에 가보기를 권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신촌이 음악의 현재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들이 공간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맥주 한 병을 주문하자. 그리고 듣고 싶은 노래를 한 곡 신청하자. 우드스탁은 지금도 신청곡을 받는다. 그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듣는다. 그리고 나오면 된다.

신촌의 음악 여행은 그렇게 시작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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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블루스 —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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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풍경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수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그중 한 편을 고르라면 나는 2003년 영화 《클래식》을 고른다.

한국에서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할 때 제목 그대로 이제는 ‘클래식’이 된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개봉하고 한참 후에야 봤다. 원래 진한 최루성 멜로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봤다. 아마 울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유명한 장면이 있다. 비가 쏟아진다. 좋아하는 마음을 이제 막 확인한 청춘 연인 둘이 비를 흠뻑 맞으며 캠퍼스를 달린다. 그리고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흐른다.

연세대에 들어가서 이어폰을 끼고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재생해보자. 손예진과 조인성처럼, 연희관에서 출발해 언더우드관 주위 작은 길들을 모두 놓치지 말고 발자국을 찍은 후에, 백양로로 돌아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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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풍경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영화 《클래식》 OST 음원)
03CAFÉ MINERVA

전람회 <기억의 습작>

미네르바는 1975년 문을 열었다. 반세기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신촌의 가장 오래된 카페다. 대학 시절 나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무 계단 삐그덕 소리를 들으며 2층으로 올라가서, 창가를 따라 이어진 바 테이블에 앉았다. 대부분 혼자였다. 그리고 늘 헤이즐넛 커피를 주문했다. 지금은 우습게 들리겠지만, 2000년 즈음의 한국에서는 헤이즐넛이 꽤 세련된 커피 메뉴였다.

카페 미네르바 2층 창가와 바 테이블
카페 미네르바 2층 창가.Photo by Kate

왜 그렇게 미네르바에 자주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무 살 언저리의 마음은 이상하다. 즐겁다가도 자주 이유 없이 출렁거렸다. 그 감정을 다스리려고 미네르바에 갔는지, 더 증폭시키려고 갔는지 모르겠다. 청춘에 찬란함이 있다면 흔들림도 있다.

그 시절 흔들리는 많은 청춘들이 전람회의 음악을 들었다. 전람회는 김동률과 서동욱,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둘 다 연세대 출신이다. 그중 <기억의 습작>은 훗날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또 한 번 많은 사람들의 청춘을 불러냈다. 대학생이었던 두 남녀가 만나고,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을 다시 기억하는 이야기. 신촌과 꽤 닮은 영화다. 역시 연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래저래 연세대와 인연이 많은 전람회다.

미네르바 2층 창가에 앉아 <기억의 습작>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커피 한잔과 함께. 헤이즐넛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청춘에 찬란함이 있다면 흔들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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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 — 기억의 습작
04SINCHON STATION 3번 출구

신인수 <장미의 미소>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일이 많았었다. “신촌에서 만나.” 그러면 대략 통했다. 신촌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도 했고 독수리다방 앞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 시절 신촌거리에는 장미꽃을 들고 걷는 청년들이 많았다. 한 송이 또는 한 다발. 발걸음이 가벼운 걸 보니,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겠지. 그 풍경을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신인수의 <장미의 미소>가 bgm으로 자동 재생된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전까지,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는 동안, 한국에는 낭만과 낙관이 넘쳤다. 물론 모든 사람의 삶이 행복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대다수의 사람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대학생이라면 취업 걱정도 그다지 할 필요 없던 시절이 길었으니. 그 낙관과 낭만을 가장 온몸으로 누린 사람들은 그 시대의 이십 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그들이 가장 많이 모이던 동네 가운데 하나가 신촌이었다. 장미꽃을 들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청년의 발걸음처럼. 신촌은 가벼웠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러 신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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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수 — 장미의 미소
05SINCHON STATION, AGAIN

포스트맨 <신촌을 못가>

같은 장소에 다시 서보자. 이번에는 시간이 흘렀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나는 신촌에 가지 않게 됐다. 대학을 졸업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촌이 계속 청춘의 중심이었다면 사람들과의 약속 때문에라도 신촌을 찾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나만 신촌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신촌을 떠나고 있었다.

젊은 문화와 음악이 있는 장소들이 비싼 임대료를 피해 홍대로 옮겨갔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동네도, 홀로 음악을 들으러 가는 동네도 바뀌었다. 그렇게 신촌은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신촌에서 멀어지고 나서도, 노래 속 신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의 장소가 되어 돌아왔다. 2013년 포스트맨은 <신촌을 못가>를 불렀다.

제목부터 이상하다. 한때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신촌에 갔다. 이제는 좋아했던 사람 때문에 신촌에 가지 못한다.

신인수의 <장미의 미소>와 포스트맨의 <신촌을 못가>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다. 하지만 신촌역에서 두 노래를 이어서 들어보면 그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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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 — 신촌을 못가

여전히, 신촌에서

신촌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신촌에는 여전히 청춘들이 있다. 그들은 스무살의 나처럼 수시로 휘청거리다가도, 여지 없이 눈부시게 파랗다.

연대 축제 《아카라카》에서 miss A 출신이자 영화 《건축학개론》 여주인공이었던 수지가 부른 연대 응원곡 <연세여 사랑한다> 영상을 보너스처럼 이 글에 덧붙인다.

청춘이여, 신촌이여, 사랑한다!

BO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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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 연세여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