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참 힘든 한 해였다. 암 투병으로 몇 달을 싸우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우리 집은 정신적으로 모두가 처참히 무너졌다. 그래도 당시 음악적으로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의 CD를 몇 개 챙겨 버스 종점에서 만나,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꽂고 종점 끝까지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던 시간이 유일한 위로였다. 그야말로 여고생의 청승맞은 시절이었지만, 그때 듣던 음악들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 명곡으로 남아 즐겨 듣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나의 뮤직 라이브러리는 대부분 팝송이었다. 압구정에는 상아레코드라는 곳이 있었는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해외 앨범을 많이 들여오던 곳으로 유명했다. 용돈만 생기면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수입 음반을 사는 게 나의 기쁨이었다. 그러다 2002년 즈음부터 음악을 듣는 취향이 바뀌기 시작했고, 압구정에서 신촌의 향음악사로 발길을 옮기며 새로운 음악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향음악사는 국내 인디밴드들의 앨범을 많이 소개해주던 전설 같은 레코드숍이었다. 당시 정말 많은 인디밴드의 음악을 수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추억 그 이상, 위로 그 이상으로 남아 있는 곡이 있다. 조규찬의 <무지개>다.
<무지개>는 2002년 발표된 조규찬의 베스트 앨범 《무지개》의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동명의 곡을 새로운 편곡과 목소리로 다시 녹음했다. 아직도 첫 도입부의 피아노와 함께 시작되는 조규찬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희열과 감동은 잊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음악에 흠뻑 젖어 있던 나는 이전까지 거의 팝송만 들었고, 조규찬이라는 가수가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조규찬은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로 이름을 알렸다. 수많은 명곡은 물론 이소라의 보컬 디렉팅 파트너로도 알려져 있고, 본인의 곡뿐 아니라 코러스에서도 독보적인 감각을 보여온 뮤지션이다. 윤종신의 <환생>, 이문세의 <조조할인>,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 등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Bee Gees나 Babyface의 음악이 연상될 만큼 완벽한 코러스 라인을 구현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 앨범 첫 번째 트랙 <무지개>에는 그 화려한 코러스가 없다. 온전히 그의 목소리와 어린 시절이 투영된 가사가 또렷하게 남는다. ‘창백한 아침 햇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그 몇 마디만으로도 한 시절의 공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지극히 자신의 이야기를 멜로디와 가사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버무려 듣는 이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피아노와 신스, 기타 솔로까지 악기 편곡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그 시절의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에서 보컬을 전공했고 그 시절에도 여전히 조규찬을 즐겨 들었지만, 정작 내가 부르던 곡들은 조규찬의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조규찬의 음악과 나의 음악은 별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나에게 노래란 누군가가 들었을 때 ‘기깔나게 잘한다’는 말을 듣는 보컬, 누가 들어도 박수를 치고 싶은, 요즘 말로 도파민이 터지는 보컬이어야 했다. 반면 조규찬의 음악은 나에게 신의 영역과도 같았다. 내가 부른다고 해서 이 감동과 느낌을 구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확히 듣는 노래와 부르는 노래 사이에 선을 명확히 그었던 셈이다. 뭐가 맞고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의 대중적인 보컬 취향이 시대를 반영한 탓도 있었을 테고, 사람의 취향은 천차만별이니 그 시절의 내 결정 또한 존중한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음악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라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한다면, 어느 정도 머뭇거리는 시늉은 하겠지만 결국 ‘위로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위로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누군가 Linkin Park의 <In the End>를 들을 때마다 오열한다고 해도 존중한다. ㅋㅋ 위로라는 것은 사람마다 취향도, 필요한 타이밍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처음 들었던 당시 나는 많이 무너져 있었고 위축되어 있었다. 이 음악이 그 시절의 나를 전부 위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음악이 흐르는 4분 43초 동안은 또 다른 판타지에 빠질 수 있었다. 회피가 아니라, 그야말로 그렇게나마 얻었던 위로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조규찬의 베스트 앨범은 CD가 튈 때까지 들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늘어진 테이프를 냉장고에 넣던 시절도 있었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조규찬의 <무지개>라는 곡이 너무 단순하고 별것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조금 속상하다. 하지만 내면의 프라이버시까지 들추며 곡을 소개하는 것만큼 진실한 소개도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닿을 거라고 믿는다. 결국 음악을 오래 남게 하는 것은 각자의 추억과 기억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의 음식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순간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음악도 어쩌면 비슷하다. 냄새와 맛이 오랫동안 영혼처럼 남아 우리에게 자신을 떠올리게 할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음악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참 고맙고도 신비로운 존재다. 그러니까 조규찬의 <무지개>가 나에게는 그런 기묘한 존재다.
나의 이야기를 읽은 당신이 혹여 나의 과거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느꼈다면 이 노래를 한 번쯤 들어보길 바란다.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이제는 아무리 따라가도 그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의 현재에서, 과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길에 이 노래가 좋은 BGM이 되길 바란다.
조규찬 <무지개>
조동익 <엄마와 성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