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가 만든 단발머리
TV에서 어린이 명작동화 말고도 다른 프로그램이 나온다는 걸 막 알아가던 무렵,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단발머리>를 열창하는 조용필을 봤다. 그때 나는 겨우 유치원생이었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은 나는 그 노래의 뮤즈가 되고 싶은 마음에 즉시 엄마를 졸라 여자아이들의 로망인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기어이 인증샷도 남겼다. 그렇게 단발머리를 하고 <단발머리>를 부르러 다니는, 세상 가장 조숙한 유치원생이 되었다.
가끔 엄마 집에 가면 옛 사진첩을 뒤지는데, 사진 속에는 뭔가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 스타일을 어색해하면서도, 어딘가 뿌듯해 보이는 유치원생이 있다. 볼 때마다 피식 웃게 된다.

한글을 꽤 빨리 깨우친 나는 팬레터도 썼던 것 같다.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조용필 오빠에게’로 시작되는 뭔가를 써서 엄마한테 자주 보내달라고 졸랐다는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거의 또래 친구뻘인 조용필에게 딸이 오빠라고 하면서 편지를 쓰니 어이가 없었을 만도 하다.
<단발머리> 이후 조용필 ‘오빠’의 거의 모든 노래를 외우고 다녔고, 그렇게 나의 가요 사랑은 시작되었다.
<미지의 세계>로의 인도
국민학생이 된 이후로도 여전히 조용필은 나의 최애였지만,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TV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무렵 우연히 내 눈에 쏙 들어온 건 TV나 큰 라디오 없이도 늘 들고 다닐 수 있는 것, 삼성에서 나온 마이마이라는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생일선물로 만 1년을 졸랐던 것 같다.
그렇게 생일선물 약속을 받아냈을 때쯤, 잊을 수 없는 CM을 만나게 된다. 삼성의 라이벌인 금성(지금의 LG)이 내놓은 아하 카세트 플레이어 광고였다. 그리고 그 광고의 CM은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였다. 일렉기타의 클라이맥스에서 신디사이저로 넘어가는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쓰는데, 이 부분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문제는 이미 삼성 마이마이를 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금성의 아하는 네모난 모양에 빨간색이라 외관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미지의 세계>를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마이마이를 버리고 아하를 사고야 만다.

아하로 듣는 모든 음악이 <미지의 세계>와 같은 감동을 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하를 받은 이후 라디오 방송을 본격적으로 듣게 되었고, 결국 <미지의 세계>는 막 10대에 들어선 나를 무한한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미지의 세계>가 실린 《조용필 7집》은 지금도 내 인생 음반 순위에서 단연 1위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40년이라는 세월을 가뿐히 뛰어넘을 만큼 세련됐고,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사운드와 조화를 이룬다. 당시 위대한 탄생에는 송홍섭, 김광민, 유재하가 있었다. 7집에 실린 <사랑하기 때문에>를 작사·작곡한 유재하의 연주 모습도 볼 수 있다.
겨우 유치원생이던 나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국민학생이 되어서는 그렇게 갖고 싶던 인생 첫 카세트 플레이어까지 바꾸게 했던 그 ‘오빠’. 어린 시절에는 그저 조용필 ‘오빠’가 좋아서 듣기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음악 안에 있던 수많은 음악가와 소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인생 최초의 아이돌 조용필은 그렇게 내 취향을 확장시켜주었고, 폭넓게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